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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출산장려금만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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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출산 예산, 반가운 시도
우리나라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반가운 변화이며 반드시 필요한 정책 방향이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예산은 50조 원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출산과 영유아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 단기적 성과와는 별개로, 정부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출산·육아 정책들
현재 시행 중인 대표적인 정책만 살펴보아도 정부의 의지는 분명하다. 첫째, 출산 시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첫만남이용권과 지자체 출산장려금이 있다. 둘째, 만 0세부터 5세까지 매달 지급되는 부모급여와 아동수당은 양육 초기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육아휴직 급여 인상,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공공보육시설 확충 등 일·가정 양립 정책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정책의 폭과 규모만 보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
그러나 수십 조 원의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원의 규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출산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은 출산의 조건일 수는 있지만, 출산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 흔히 보이는 세 자녀 가족
미국에 거주하는 지인들 중에는 아이를 셋씩 낳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외국인 가족을 보아도 아이 셋은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이들이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사회에는 공통적인 정서가 존재한다. 바로 미래에 대한 낙관이다.
출산은 미래에 대한 믿음의 표현
아이를 낳는 선택은 현재의 소득이나 일시적인 지원금보다 훨씬 장기적인 판단이다.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질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출산은 감히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젊은 가정은 사회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젊은 가정이 느끼는 불안
반면 우리나라의 젊은 가정에게 아이 한 명을 낳는 일은 점점 더 큰 불안으로 다가온다. 집값과 교육비 부담, 불안정한 노동시장, 과도한 경쟁, 노후에 대한 책임까지 거의 모든 위험이 개인과 가정에 집중되어 있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는 선택은 이기심이 아니라 합리적인 위험 회피다.
출산율을 높이는 진짜 해법
결국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단기적인 현금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 회복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 노력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 아이가 부담이 아니라 사회의 동반자라는 인식이 쌓여야 한다. 젊은 세대가 이 사회의 미래에 자신도 동참하고 싶다고 느낄 때 출산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출산은 정책이 아니라 신뢰의 결과
출산은 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기대, 공동체에 대한 참여 의지가 축적된 결과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를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사회의 미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는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