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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담장 안의 성과급 잔치, 담장 밖의 시린 겨울

임윤철 발행인 · 2026.05.11

[임윤철 칼럼]담장 안의 성과급 잔치, 담장 밖의 시린 겨울

어릴 적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생각거리"를 줍니다. 이야기는 이렇지요. 거인이 자기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담장을 쌓고 아이들을 내쫓았습니다. 그 결과 거인이 얻은 것은 고요함이 아니라,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영원한 겨울뿐이었습니다.

최근 우리 경제계의 어느 대기업모습이 이 거인의 정원과 닮아 보입니다. 대기업들이 역대급 영업이익을 발표하자, 그 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치열한 갑을논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주들은 배당을 늘리라 하고, 근로자들은 성과급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합니다.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서 이익 공유를 압박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요란한 잔칫상 뒤편, 담장 밖 차가운 바닥에서 말 한마디 못 하고 속앓이하는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기업과 연결된 수많은 중견·중소기업들입니다.

영업이익이라는 숫자의 함정

회계적으로 영업이익은 매출이익에서 판관비(판매관리비)를 뺀 값입니다. 기업이 물건을 팔아 남긴 돈에서 운영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벌어들인 수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숫자의 이면을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대기업이 기록한 막대한 매출이익이 과연 오로지 그들만의 혁신으로 일궈낸 것일까요? 혹시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폭등하는 와중에도 협력사들에게 단가 인하를 압박하며 혹시 ‘박한 대우’를 한 결과는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협력사의 마진을 깎아 대기업의 매출이익을 부풀리고, 마땅히 지출해야 할 판관비를 하청업체에 전가하며 얻은 이익이라면 그것이 과연 대기업이 만든 정당한 성과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거인이 정원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자기 것이라 믿었을 때 봄이 사라졌듯, 혹시 대기업이 생태계의 또 다른 구성원의 희생으로 영업이익을 많이 만들었다면, 과연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을까요?

총파업의 함성과 소외된 이들의 침묵

지금 대기업 근로자들은 영업이익을 나누어달라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 함성이 커질수록 담장 너머 중소기업들의 침묵은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대기업 근로자들이 성과급 액수를 두고 줄다리기를 할 때, 그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에 시달립니다. 대기업 내부의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다툴 때, 정작 그 이익을 만드는 데 묵묵히 기여한 협력사들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말도 못 하고 속앓이하는 이 중소기업들이야말로 거인의 정원에서 쫓겨나 떨고 있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결론: 담장 밖, 침묵하는 경제주체들에게 눈을 돌릴 때

동화 속 거인은 정원 구석에서 나무에 오르지 못해 울고 있던 작은 아이를 도와준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정원에 봄이 오지 않은 이유가 바로 자신이 쌓은 담장 때문이 아닐까요? 거인이 담장을 허물고 아이들을 다시 불러들였을 때, 비로소 정원에는 다시 꽃이 피고 새가 노래했습니다. 지금 경제계는 대기업의 영업이익 분배라는 주제로 매우 시끄럽습니다. 성과급의 숫자를 따지고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화려한 실적을 만들어낸 담장 밖의 작은 경제주체들에게도 반드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들은 지금 자신의 몫을 주장하기보다 생존을 위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차갑지만 경영의 목적은 결국 사람이어야 합니다. 대기업이라는 거인이 진정한 봄을 맞이하려면, 침묵 속에 속앓이하는 중소기업이라는 소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익의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익이 흐르는 ‘통로’입니다. 온기가 담장 밖 작은 주체들에게까지 전달될 때, 대한민국 경제라는 정원에도 진정한 봄이 찾아올 것입니다. 담장을 허물고 시선을 낮출 때, 우리 모두의 겨울이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