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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대한민국 R&D의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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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매몰된 R&D, 낭비되는 국가 자산
지난 5월 11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홍성주 박사의 칼럼은 현재의 기술 패권 경쟁이 기업 간의 경쟁을 넘어 국가 체제 간의 전면전으로 전환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GDP 대비 R&D 투자 비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화려한 통계 지표 이면에는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 R&D 예산이 아무리 증가하더라도, 매년 쏟아지는 7만여 개의 프로젝트가 진정으로 혁신적이지 않은 목표를 향해 기획되었다면, 이는 국가 자산의 효율적 배분이 아닌 거대한 예산 낭비에 불과합니다. 홍 박사의 제언처럼 이제는 국가가 혁신 조직의 사령부가 되어 기술사업화(T2M)를 지원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합니다. 우리의 R&D는 여전히 관료주의적 칸막이와 경직된 평가 시스템에 갇혀 있습니다. 시장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 정해진 기한 내에 서류상의 지표를 달성하는 데 급급한 것이 현실입니다.
엔지니어링의 지혜에서 배우는 '컨커런트 R&D'
제조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기법 중 '컨커런트 엔지니어링(Concurrent Engineering)'이 있습니다. 이는 설계, 개발, 제조, 마케팅 단계를 선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 병행적으로 수행하여 제품 출시 기간을 단축하고 품질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이제 우리 국가 R&D 체계에도 이 개념을 이식한 '컨커런트 R&D(Concurrent R&D)'가 절실합니다. 기존의 R&D가 연구와 개발, 사업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컨커런트 R&D는 연구의 시작 단계부터 시장의 목소리와 사업화 전략이 동시에 가동되는 구조입니다. 연구가 끝날 때까지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연구실의 연구가 시장을 향해 뒤늦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연구와 시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달려야 합니다.
양손잡이 연구자: 기술의 심장과 비즈니스의 머리를 동시에 갖추다
컨커런트 R&D를 성공시키기 위해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단순히 기술적 전문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연구자는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엔지니어링 역량과 함께 비즈니스의 속성을 깊이 이해하고 대응하는 '양손잡이 연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비즈니스 언어를 사용하는 차원을 넘어, 비즈니스의 본질적 속성을 연구 프로세스에 녹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손잡이 연구자란 자신이 개발하는 기술이 시장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비용 구조와 수익 모델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는 무엇인지를 기술 개발의 핵심 요소로 삼는 사람입니다. 비즈니스 주체들과 상시 대화하며 기술적 완결성만큼이나 비즈니스적 타당성을 동시에 고민할 때, 비로소 '죽음의 계곡'을 넘는 진정한 혁신이 가능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추진력과 플렉서블한 목표 수정
글로벌 기술 경쟁은 1분 1초를 다투는 속도전입니다. 컨커런트 R&D는 시의적으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합니다. 이는 단순히 노동 시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상시 대응 체계'를 구축하자는 의미입니다. 어제의 유망 기술이 오늘의 사양 기술이 되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관행적인 과제 관리 방식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목표의 수정은 매우 '플렉서블(Flexible)'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제 목표를 변경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연구 과정에서 발견된 새로운 기회나 시장의 변화에 맞춰 목표를 과감히 피벗(Pivot)하는 유연함에서 나옵니다. 잘못된 목표를 끝까지 완수하는 '성공한 실패'를 경계하고, 목표를 수정해서라도 시장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도전을 장려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선도형 R&D 체계로의 도약
한민국은 더 이상 추격자(Fast Follower)에 머물 수 없습니다. 홍성주 박사가 강조했듯, 국가가 혁신의 사령부가 되어 위험을 감내하고 스스로 길을 내는 선도형 체제로 가야 합니다. 그 핵심 동력은 바로 컨커런트 R&D입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양손잡이 연구자들이 시장과 호흡하며, 시의성을 놓치지 않고 유연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대한민국 R&D는 비로소 국가 성장의 강력한 엔진이 될 것입니다. 단순한 예산 증액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연구하고 어떻게 가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철학의 변화입니다. 컨커런트 R&D로의 대전환을 통해 실질적인 기술 패권 국가로 거듭나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