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업화 인사이트
[곽재원 컬럼] AI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 : '기술 블럭화'
![[곽재원 컬럼] AI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 : '기술 블럭화'](https://cdn.coenworks.com/Files/399/News/202609/6862_20260918114512506.webp)
세계 질서의 지각판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 AI 패권경쟁이 본격화한 지금, 우리는 과거의 틀로는 이 지각변동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냉전 시대 군사력과 세계화 시대의 자유무역 체제에 이어, 이제 세계는 '기술블록화'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문턱에 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팍스 실리카(Pax Silica)'로 상징되는 기술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와 핵심광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망을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세계AI협력기구(WAICO)'를 출범시켰고, 저비용 AI 모델과 오픈소스 방식으로 글로벌 사우스에 접근하고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술 주도권의 경쟁은 더 이상 알고리즘의 우수성만을 묻지 않는다. 반도체부터 데이터, 핵심광물, 전력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묶으려는 '질서의 경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변수가 있다. 바로 인도와 글로벌 사우스의 움직임이다. 이들은 양쪽 모두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단순히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여러 기술 네트워크에 동시에 연결되는 '다층적 블록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두 개의 중심과 다수의 스윙 파워가 존재하는 기술 다극체제'라고 부른다.
이것이 냉전과 다른 점이다.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진영의 명확한 대립이었다. 그러나 AI 시대는 훨씬 복잡하다. 한 국가가 안보에서는 미국과 협력하면서 무역에서는 중국과 거래할 수 있고, 여러 AI 모델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를 단순한 '미국 대 중국'의 양극체제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팍스 실리카의 핵심 참여국이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느 블록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그 블록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전략은 명확해야 한다. 반도체의 제조와 고대역폭 메모리, 배터리 소재와 제조, 자동차·로봇·스마트 팩토리 같은 피지컬 AI, 원전과 전력 인프라까지 연결된 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의 기술동맹을 강화하면서 인도, ASEAN, 중동, 아프리카와 AI 산업협력 네트워크를 넓혀야 한다.
AI 패권경쟁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알고리즘을 가진 나라만은 아닐 것이다. 반도체, 핵심광물, 전력, 데이터, 자본, 인재, 그리고 우방국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 시대의 핵심 질문은 "어디에서 가장 싸게 만들 것인가"였다. AI 시대의 질문은 달라졌다. "누구와 함께 만들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우리는 그 네트워크에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
한국이 필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라는 수동적 선택이 아니다.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전략적 역할을 만들어내는 것, 바로 그것이 AI 패권경쟁 시대를 주도적으로 헤쳐갈 우리의 진짜 국가전략이어야 한다.
출처 : 저스트이코노믹스
링크 : https://www.justeconomix.com/ko-kr/articles/152919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