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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칼럼] 왜 한국형 베어허그(Bear Hug)가 필요한가

유효상 · 2026.09.23

[유효상칼럼] 왜 한국형 베어허그(Bear Hug)가 필요한가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M&A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달 초 발의된 '한국형 베어허그법'이 자본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어허그는 인수자가 대상 기업에 매력적인 인수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이사회가 검토하고 입장을 밝히도록 압박하는 M&A 전략이다. 큰 곰이 상대를 꼼짝 못 하게 꽉 껴안는 모습에서 유래한 이 제도의 본질은 무엇일까.

베어허그의 본질은 인수 제안의 수락을 강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사회로 하여금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부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최근 고려아연과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에서 확인했듯, 적대적 공개매수 상황에서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절차의 필요성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의 정당한 요구라고 볼 수 있다.

베어허그 입법의 배경에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낮은 기업가치 문제가 있다.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약 69%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으로, 미국 20%, 일본 36%에 비해 그 비중이 현저히 높다. 이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투자자 신뢰 부족, 지배구조의 비효율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기업가치가 낮은 상황에서 인수 제안이 들어왔을 때, 현 경영진이 이를 개선할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외부 경영진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사회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베어허그 도입의 핵심이다.

이번 개정안은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개매수에 대해 이사회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 절차를 거쳐 의견을 표명하고, 인수 제안 내용과 검토 계획, 판단 결과와 이유 등을 공시하도록 규정한다. 공포 후 6개월 후 시행되며, 의견표명 의무 위반 시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무엇을 위반했을 때 책임을 지는가'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검토 범위와 절차, 독립성 요건, 공시 수준 등 명확한 기준 없이 제재부터 한다면 이사회는 주주가치 제고보다 법적 책임 회피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제도의 본래 의도를 훼손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자본시장은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복수의결권 같은 글로벌 표준 경영권 방어 수단이 거의 부재한 실정이다. 공수의 균형이 무너진 현실에서 이사회에 법적 책임과 설명 의무만 일방적으로 가중하면 기업 경영권은 심각한 방어력 공백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기업 규모별 영향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대기업집단은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우호지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외부 인수가 어렵지만, 중소·중견 상장사는 인수 제안만으로도 주가와 경영권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같은 제도가 미치는 파급력이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다.

또 다른 문제는 제도의 악용 가능성이다. 행동주의 펀드나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실제 인수 의사 없이 인수 제안을 공개해 주가를 움직이거나 경영진을 압박하는 '떠보기식 베어허그'가 늘어날 수 있다. 경쟁회사가 핵심 기술이나 영업 정보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진성 인수 제안(bona fide offer)을 판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정부가 거론하는 '베어허그 M&A 지원펀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금 능력이 부족한 인수자가 공적 자금에 의존한다면 함량 미달의 제안이나 시장 교란 목적의 베어허그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성패는 법안의 조속한 통과보다 시행령과 하위 규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진성 인수 제안의 판단 기준, 독립적 심사 요건, 공시 내용, 정당한 경영권 방어의 범위를 명확히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인수 제안 공시 시한을 제한하고 자금조달 능력 확인을 의무화해 허위 제안을 사전에 차단하는 구체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해외 선진시장은 단순한 법률 조항보다 오랜 판례와 정교한 절차적 규칙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해왔다. 미국은 1980년대 델라웨어 판례들을 통해 이사회의 경영 판단 한계를 구체화했고, 영국은 'Put Up or Shut Up' 규칙으로 무분별한 시장 교란을 통제했다. 한국도 이러한 해외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단순한 절차적 장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베어허그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베어허그가 이사회의 투명한 의사결정을 강제하는 '절차적 보호장치'라면, 의무공개매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주주와 공유하는 '재무적 보호장치'다. 경영권 경쟁의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주주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면 두 제도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베어허그의 본질은 적대적 M&A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있다. 대기업에는 실질적인 경영권 경쟁을, 중소·중견기업에는 허위 제안으로부터의 보호를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제도가 또 하나의 규제로 전락할 수 있다. 지배주주가 자리를 지킬 이유를 설명하고, 인수자가 능력을 증명하며, 주주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제도 설계. 이것이 한국 자본시장에 필요한 진정한 'K-베어허그'다.

출처 : 머니투데이

링크 : https://www.mt.co.kr/opinion/2026/09/22/2026092208544621884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