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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칼럼] 미국 없는 유럽의 미래

이홍 · 2026.05.14

[이홍 칼럼] 미국 없는 유럽의 미래

이란전쟁으로 유럽과 미국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며, 미국을 배제한 유럽 독자 방위 체계 구축 논의가 깊어지고 있다. 정말 이렇게 된다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대서양 안보 질서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대사건이다. 유럽이 독자적인 북대서양조약 기구(NATO)를 구축한다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략적 자율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것이 유럽에 유리할까? 이러한 변화로 유럽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뺄 경우, 동유럽 즉, 폴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등의 국가들은 실존적 위협에 빠지게 된다. 이들 국가는 역사적으로 러시아(구 소련) 팽창주의의 직접적 피해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이 주축이 된 서유럽 국가들의 안보 공약도 불신하고 있다.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분할 점령 당시 영불 동맹의 무기력한 대응을 동유럽 국가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현재 GDP의 4% 이상을 국방비에 쏟으며 유럽 최대의 국방국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서유럽 주도의 유럽군에 편입되기보다는 독자적 무장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국가 간 안보 동맹을 결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 국가 내 이질적인 지정학적 단층이 생겨남을 의미한다.

미국이 배제된 유럽은 러시아를 대하는 전략적 접근에서 심각한 분열을 경험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과 동유럽은 지리적 및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다른 대러시아 정책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 국가는 러시아에 밀착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러시아를 유럽 안보 구조의 일부로 포용하는 대륙적 시각을 견지하였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또한 러시아를 배제한 유럽의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틀어지긴 했어도 독일 역시 러시아와의 에너지 및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중시해 왔다. 반면, 동유럽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관계로 강력한 대러시아 억제정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략적 불일치가 있는 상태에서 유럽 독자 방위 체계를 다지는 일은 쉽지 않다.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면, 유럽 내 국가 간 군사적 패권 다툼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 통합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 간의 주도권 경쟁이 심화될 수 있어서다. 프랑스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이후 EU 내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며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이고, 해외 원정 능력을 갖춘 국가다. 반면, 독일은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재무장을 본격화할 경우 단기간 내 유럽 최강의 군사 대국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두 나라는 서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다. 1870~1871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격파하며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전쟁에서 패배 후 감정이 상한 프랑스는 영국, 러시아와 손잡고 독일과 충돌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연합국 일원으로 승리했지만, 경제적 타격이 심했다. 독일 역시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영토를 잃었고 막대한 배상금도 지불해야 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 후 프랑스를 패망시켰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이탈리아와 일본이 독일 편에 가세하면서 독일에 기우는 듯했던 전쟁은 1941년 미국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며 1945년 전쟁이 종식되었다. 이후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등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주도하며 현재는 유럽 연합(EU)의 핵심 동반자로 변모하였다. 이런 변화의 밑바탕에는 미국이 있었다. 만일, 미국이 유럽에서 철수하여 조정자가 없는 상황이 되면, 프랑스의 '전략적 리더십'과 독일의 '경제·산업적 헤게모니'가 재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이 미국 없이 독자적인 NATO를 구축할 경우 엄청난 경제적 손실도 감수하여야 한다. 안보에 대한 미국 의존도는 낮출 수 있지만, 그 대가가 엄청나다.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2014년 웨일스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NATO 국방비 가이드라인에 따라 GDP의 2%를 준수하면 되었다. 상황이 바뀌었다. 2026년 4월 공개된 NATO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역사상 최초로 유럽 32개 회원국 전체가 GDP 대비 2% 국방비 목표를 달성하거나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6월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지만, 미국이 NATO에서 탈퇴하면 그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국방비 증액은 유럽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고비용 복지 국가 모델과 정면충돌한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고착화된 유럽 경제 상황에서 국방비를 급격히 늘리게 되면 연금, 의료, 교육 등 사회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대포와 버터(Guns and Butter)'의 딜레마에서 유럽은 지난 수십 년간 버터를 선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미국의 안보지원 덕분이다. 미국이 유럽에서 빠지면, 유럽은 무기를 생산하고 구입해야 하는 국방 고비용 시대를 맞게 된다. 이는 심각한 노사 갈등과 사회적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또 다른 어려움도 있다. 유럽에서의 군사통합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1950년대 초 유럽은 유럽방위공동체(EDC) 창설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유럽에서의 군사통합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경제 공동체를 완성하였으니 군사·안보 공동체도 가능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암초가 많다. 우선, 회원국들이 군사 작전 통제권과 파병 결정권을 초국가적 기구에 양도하기가 쉽지 않다. 자국 군인이 피를 흘려야 하는 결정을 EU의 관료나 타국의 장군에게 맡길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쉽게 풀기 어렵다. 의사결정 방식도 난제다. EU의 만장일치제를 유지할 경우 신속한 군사 대응이 불가능하다. 반대로 다수결을 도입할 경우 소수 의견 국가의 주권 침해 논란이 일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얽혀 있는데 유럽이 과연 독자노선을 걸을 수 있을까?

출처 : 뉴스프리존

링크 : 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8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