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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 미국이 발명하고 중국이 키울 때, 우리는 어디서 시장을 만드는가

임윤철 발행인 · 2026.07.31

[임윤철 칼럼] 미국이 발명하고 중국이 키울 때, 우리는 어디서 시장을 만드는가

기술 혁신의 역사는 늘 '첫 번째 구매자(First Buyer)'가 누구였는지에 의해 승패가 갈렸다. 오늘날 세계 첨단기술 시장을 둘러싼 대격돌의 본질 역시 단순한 R&D 경쟁이 아니다. 기술을 처음 만든 국가와, 그 기술을 사주어 거대한 산업 생태계로 키워낸 국가 간의 '시장 창출' 싸움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원천기술과 기초 과학으로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 내면, 중국은 방대한 내수 시장과 강력한 제조 생태계를 앞세워 가장 먼저 판을 깔아준다. 드론,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에 이어 최근의 피지컬 AI와 로보틱스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초기 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실증하고 단가를 낮추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집어삼켰다. "미국이 발명하면 중국이 시장을 만든다"는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의 일침은 기술의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어서는 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술 생태계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매년 막대한 예산을 R&D에 투입하며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 내지만, 정작 이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여 첫 매출을 일으키는 단계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한다. 초기 기술은 완성도가 부족하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간 시장이 선뜻 위험을 감수하며 구매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생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근본적인 역할 재정립이 요구된다. 정부의 진정한 역할은 단순히 연구개발비를 보조하거나 규제 완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첫 번째 구매자'가 되어 시장을 직접 만들어주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왔을 때, 정부나 공공부문이 선제적으로 이를 구매해 실증 기회를 제공하고 첫 매출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레퍼런스가 생긴 기업은 비로소 자금을 회수하고, 품질을 개선하며, 본격적인 민간·글로벌 경쟁력 싸움에 돌입할 수 있는 체력을 얻는다. 공공조달이 기술기업의 강력한 마중물이자 가장 확실한 시장이 되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기술사업화의 성패는 실험실 안의 기술 격차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현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매출을 발생시키고 스케일업 하느냐에 달려 있다. 발명에 그치지 않고 시장을 창출해 내는 국가만이 첨단기술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된다. 정부가 가장 과감한 첫 번째 고객이자 탄탄한 시장이 되어줄 때, 우리 기업들은 비로소 세계를 무대로 주도적인 경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