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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컬럼] 기후위기와 知覺革命의 시대(3) 정상성의 함정과 사라지는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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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혁명의 마지막 장면은 정부의 예산도, 기업의 이사회도 아니다. 개인의 시간 감각과 위험 감각이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시민의 감각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제도는 다음 선거를 버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사계절이라는 틀이다. 봄과 가을이 눈에 띄게 짧아지고 여름은 길고 강해지며, 겨울은 짧지만 더 극단적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 리듬은 오랫동안 명확한 사계절 위에 세워져 있었다. 새 학기, 벚꽃 축제, 단풍 여행, 수확 행사들이 계절 주기와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봄가을이 실질적으로 사라진다면, 그 위에 얹혀 있던 생활 리듬 전체가 다시 짜여야 한다. 문제는 이 재편이 정부 정책보다 훨씬 느리게, 훨씬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정부는 폭염특보 체계를 몇 달 만에 새로 만들지만, 사회가 '봄가을이 사라졌다'는 현실을 문화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 위험한 것은 정상성 편향이다. 매해 '역대 최고 폭염'이라는 표현이 반복될 때마다, 극단이 점점 새로운 평균으로 조용히 흡수된다. 처음 몇 해는 경각심을 일으키던 그 표현이 몇 년 뒤에는 배경음처럼 무뎌진다. 사람들은 "올여름 진짜 덥다"고 말하지만, 그 말에 담긴 위기감의 밀도는 해마다 옅어진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특보로 다뤄지던 폭염이 몇 해 뒤엔 일기예보의 일상적 항목이 된다. "또 덥다"는 반응은 놀라움이 아니라 체념이 된다. 위험은 이미 현재형인데 감각은 계속 미래형으로 남는 것이다.
이 정상성 편향은 기후위기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급성 재난이 아닌 만성적 변화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번 '이번이 특별히 심한 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특별함이 누적되어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매해의 기록은 예외로 소비되고, 예외들이 쌓여 만든 흐름은 아무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더욱 복잡한 것은 세대 차다. 40도 여름을 성인이 된 뒤 처음 겪은 세대와 유년기부터 당연하게 겪은 세대는 같은 폭염을 완전히 다르게 감각한다. 앞의 세대는 비교 기준점이 있어 아직 이례적으로 느껴지지만, 뒤의 세대는 40도가 원점이다. 이 세대 차는 단순한 체감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온도차로 옮겨간다. 폭염 대응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세대별로 다른 수준의 지지를 보인다는 뜻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언어의 문제다. 지금까지 폭염은 '견디는' 대상으로 언어화됐다. "더위를 참는다", "여름을 버틴다"는 표현 속에는 폭염을 정신력으로 통과해야 할 시련으로 보는 프레임이 있다. 그러나 상수형 리스크에 어울리는 언어는 다르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관리한다"로 어휘가 옮겨가야 한다. 기업이 재무 리스크를 "버틴다"고 하지 않고 "헤지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폭염도 매년 새 시련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관리할 변수로 언어화될 때, 비로소 그에 걸맞은 준비와 투자가 자연스러워진다.
세 편의 칼럼이 도달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정부의 제도, 기업의 전략, 개인의 감각은 독립적인 세 층위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순환 구조다. 정부가 아무리 상시 리스크 관리 국가로 재설계를 밀어붙여도, 유권자가 폭염을 더 이상 위험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그 재설계는 다음 선거를 넘기지 못한다. 반대로 개인의 감각이 상수화된 위험을 정확히 인식하면, 정부와 기업의 재설계는 훨씬 단단한 사회적 지지 위에 설 수 있다. 지각혁명은 예산서에서 시작해 법전을 거쳐 이사회 안건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매년 여름을 서로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로 완성된다. 그 대화 속에 위기의식이 살아 있어야만, 제도와 전략의 재설계가 일회성 개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출처 : 저스트이코노믹스
링크 : https://www.justeconomix.com/ko-kr/articles/152666
본 내용은 저자의 허락으로 오이마켓 편집국이 축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