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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관세 25% 앞에서도 느긋한가 - 한국식 일처리가 부른 산업 재앙

임윤철 · 2026.02.06

[임윤철 칼럼]관세 25% 앞에서도 느긋한가 - 한국식 일처리가 부른 산업 재앙

1.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달리는 정치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재인상하는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정치권은 그제야 대미 투자특별법 특위를 만들겠다며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서둘러 움직임’의 진짜 의미는 대응의 의지가 아니라, 뒤늦게 깨달은 무능의 고백이다. 문제는 이 지연의 대가를 정부도 국회도 아닌 한국 기업들, 그것도 글로벌 경쟁 최전선에서 몸으로 버티는 산업들이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2. 미국은 말=실행, 한국은 말=시작

이번 상황의 본질은 단순히 외교력 부족이 아니다. 더 깊게 보면 일하는 방식의 문화 차이다. 미국에서 “Let’s do it”이라는 말은 그 순간 프로젝트가 개시됐다는 뜻이다. 구체적 일정과 책임이 즉시 따라붙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합시다”는 여전히 ‘검토 시작’에 불과하다. “합시다” → “그럽시다” → “일정 잡죠”라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문제는 국제 협상에서는 이 절차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신뢰 훼손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국회의 속도를 ‘행정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 판단은 즉각 협상 조건 악화로 이어진다. 이번 25% 관세도 그런 맥락 속에서 가속화되었다.

3. 산업별로 떨어지는 파편들 — 관세 25%는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다

정치가 느리면, 현장의 산업이 대신 맞는다. 그리고 이번 관세 인상분은 단순한 ‘원가 증가’ 수준이 아니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충격이다.

- 자동차 산업 — 가격 경쟁력 붕괴

미국은 한국 자동차의 최대 시장 중 하나다. 관세 25%가 적용되면 완성차 가격은 수천만 원 단위로 상승한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해왔는데, 25% 인상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 자체를 내주는 문제로 이어진다.

- 철강 산업 — 수출길이 사실상 봉쇄

한국 철강 산업의 최대 수출처는 미국이다. 철강은 가격 탄력성이 낮기 때문에 관세 25%는 사실상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다. 자동차·에너지용 강재는 미국 의존도가 높아, 철강 → 자동차 → 부품으로 이어지는 연쇄 타격이 우려된다.

- 배터리 산업 — IRA 불확실성 속 추가 리스크

배터리 기업들은 이미 IRA 때문에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해왔지만, 관세 25%는 또 다른 변수를 만든다. 양극재·전해액 같은 핵심 소재가 한국에서 미국 공장으로 공급되는데 관세가 붙으면, 미국 현지 생산비용 자체가 치솟는 역설이 발생한다.

- 전자·가전 산업 — 브랜드 이미지까지 타격

가전 제품에 관세 25%가 붙으면 가격 문제뿐 아니라 “왜 갑자기 비싸졌나”라는 소비자 인식 문제까지 생긴다. 이는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브랜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4. 기업인은 알고 있는데, 국회의원과 정부 공무원만 모른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국제 업무 방식에 이미 익숙하다. 미국 파트너가 “Let’s discuss”라고만 해도 바로 문서가 만들어지고, “Let’s do it”이면 일정표가 먼저 나온다. 그러나 정부·국회는 여전히 내부 합의 → 조율 → 일정 논의라는 구시대적 속도에 머물러 있다. 국제 협상에서 이 순서는 느린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5.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기업에게 배워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을 ‘지원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역으로 배워야 한다. 말한 순간 일정이 잡히는 속도, 책임과 실행이 분리되지 않는 방식, 국제 협상에서 시간=힘이라는 감각, 그리고 말이 행동과 연결되는 구조. 이것은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미 몸으로 익힌 방식이다.

관세 25%는 경고다. 한국식 “합시다” 문화는 국제 무대에서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다음 위기 역시 기업이 대신 맞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