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업화 인사이트
[임윤철 칼럼] 기록을 만드는 사람들 - 자기애, 도전, 그리고 균형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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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달리기를 시작한 필자가 마라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기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거리에서 뛰는 사람들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어제는 에버런(EVER RUN)클럽의 동계훈련이 끝나고 일요일에 국제마라톤대회를 마지막으로 회원들이 모여서 뒷풀이를 했다. 회원 모두가 필자의 마라톤 선배들이다. 각자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완주를 해낸 사람들을 축하하는 자리이면서 다음 레이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저녁시간이었다.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했다. 그런데 그 단순함 속에는 분명한 구조가 있었다. 일정한 페이스, 반복되는 훈련,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리듬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오면서 이거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마라톤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마라톤에서 기록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빠르다는 뜻이 아니다. 기록은 자신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결과로 나타난다. 자신에 대한 태도로,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자기에 대한 사랑, 둘째는 자기에 대한 도전, 그리고 세째는 자신과 환경과의 균형 감각.
첫 번째, 자기에 대한 사랑.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기록을 만든다. 여기서의 자기애는 감정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인식이다. 자신의 호흡을 읽고, 한계를 인정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 많은 초보 러너들이 초반에 무너지는 이유는 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모른 채 달리기 때문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자신을 아는 것, 그리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애 없는 도전은 용기가 아니라 착각이고 더 나아가면 만용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자기에 대한 도전.
마라톤은 결국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30km 이후, 몸은 멈추라고 말하고, 정신은 흔들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정의 반복이다. 한 걸음을 더 내딛을 것인가, 아니면 멈출 것인가. 이 질문에 계속해서 ‘YES, 나는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만이 기록에 가까워진다. 니체도 인간을 ‘자신을 극복하는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라톤에서 기록을 만드는 사람은 타인을 이긴 사람이 아니라, 포기하려는 자신을 이긴 사람이다.
세 번째, 자신과 환경과의 균형감각.
가장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이다.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무너지고, 환경을 읽지 못하면 지친다. 마라톤은 단순한 전진이 아니라 조율의 기술이다. 동양 사상에서는 중용도 강조했고, 흐름을 거스르는 힘을 경계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균형에서 찾았다. 기록은 더 빠른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세 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자기애는 기준이 되고, 도전은 확장이 되며, 균형은 지속을 만든다.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마라톤의 기록은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인식된다. 에버런 마라톤클럽 선배들의 이야기가 남긴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은 더 강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방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세가지 태도는 마라톤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더 절실하게 요구받는 영역, 기술사업화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많은 연구개발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자기애의 결핍), 시장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고(균형의 붕괴),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방향을 잃는다(도전의 부재). 결과는 언제나 같다. 출발은 있었지만, 완주는 없다.
기술사업화를 추구하는 연구개발자에게 필요한 것도 이 세 가지다. 자신의 기술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능력,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도전하는 지속성, 그리고 시장과 타이밍을 읽는 균형 감각.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기술은 비로소 ‘사업’이 된다.
마라톤을 구조라고 인식해 보았다. 속도보다는 리듬, 힘 보다는 지속, 의지보다는 선택의 반복. 처음 TV 속 마라톤을 보며 느꼈던 그 질문은 이제 더 선명해진다. “왜 저 사람들은 끝까지 달릴 수 있는가.” 그 답은 단순한 것 같다. 이들은 자신을 알고, 자신을 넘어서며, 상황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제, 그 질문은 트랙을 넘어 우리의 대학과 출연(연) 실험실과 시장을 향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 35조가 넘는 예산을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비용으로 만들지?, 투자로 만들지?. 과학기술인들에게 주어진 큰 숙제이다. 이제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과학기술인에게 부여된 "기술사업화의 길"을 마라톤에서 또 한번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