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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춘천 높이만큼의 우주, 그리고 새 우주청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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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까지의 거리를 ‘수직으로’ 세워 올리면 어디쯤일까. 우리가 주말 나들이로 감각하는 70~80km는 위로는 성층권을 지나 ‘우주’라는 말이 붙는 경계에 닿는다. 멀어 보이던 우주가 사실은 생각보다 가깝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즘의 ‘뉴스페이스’ 열풍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재사용 로켓과 위성 인터넷, 민간 달 탐사까지—우주는 더 이상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경쟁의 단위는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다.
“그 돈이면 지구 문제부터”라는 반론
억만장자들이 우주개발에 돈을 쏟아붓는 장면은 늘 논쟁을 부른다. 기후위기, 불평등, 전쟁과 난민… 당장 해결할 숙제가 산더미인데 왜 하필 우주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 투자는 지구 문제의 ‘대체’가 아니라 ‘확장’에 가깝다. 기상·재난 감시, 항법, 통신 인프라는 이미 우주에서 내려오고 있고, 우주 산업이 만든 소재·추진·제어 기술은 에너지와 제조 혁신으로 번진다. 무엇보다 우주 데이터는 ‘관측-예측-대응’의 시간을 단축한다. 홍수·산불·해양오염을 더 빨리 보고 더 정확히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지상의 비용은 줄어든다. 지구를 살리는 도구가 우주에서 태어나는 역설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주인 없는 공간, 먼저 ‘발도장’이 권리다
우주는 주인이 없는 공간이다. 궤도 슬롯, 주파수, 달·심우주 거점은 시간과 함께 희소해진다. 결국 누가 먼저 경험을 축적하고 표준과 공급망을 선점하느냐가 ‘침 바른 사람’의 권리로 굳어진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속도와 규모가 부족하다. 민간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며, 실패를 학습으로 바꿀 때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선진국이 우주에서 벌이는 경쟁은 ‘기술’ 이전에 ‘자본과 계약’의 게임이라는 점을 잊기 쉽다.
우주청 시대, 지원이 아니라 ‘설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우주항공청의 시대를 열었다. 정부가 산업을 밀어주는 방향은 분명 반갑다. 다만 경제 규모와 기업 체력을 냉정히 보면, 국내 민간기업이 단숨에 우주에 발을 들여놓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은 보조금 집행이 아니라 시장을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공공이 ‘첫 고객’이 되어 서비스를 구매하고(발사·위성영상·통신), 대형 사업을 민간이 들어올 수 있게 쪼개며, 단계별 성과 게이트로 실패 비용을 관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세제·보험·금융을 묶어 “성공하면 커지고 실패해도 죽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시험장·발사장·인증 체계 같은 공용 인프라는 국가가 깔아줘야 한다. 규제는 최소화하되 안전과 보안은 강화하고, 국제협력은 이벤트가 아니라 공급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업 구조는 ‘한 번의 실패’가 평판과 주가에 곧바로 반영된다. 우주처럼 실패가 잦은 산업에 뛰어들기엔 리스크 프리미엄이 너무 크다. 그러니 정부는 “하지 말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게 만들까”를 답해야 한다. 조달 규정을 스타트업 친화적으로 바꾸고, 실증을 빠르게 허용하며, 수출통제·보안 규정은 예측 가능하게 정리해 기업이 장기 로드맵을 그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인력도 중요하다. 우주공학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데이터, 전장부품, 배터리와 전력, 소재까지 ‘지상 산업’의 역량을 우주로 끌어올리는 연결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표를 ‘달 착륙’ 같은 단일 이벤트로 좁히기보다, 위성데이터 기반의 농업·해양·안보·재난 서비스처럼 돈이 도는 다운스트림 시장을 키워야 한다. 산업은 결국 매출로 버틴다. 정부가 사주고, 민간이 팔고, 국민이 체감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때 한국의 우주산업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산업’이 된다.
새 청장에게 거는 기대
우주청장을 외부에서 모셔왔지만, 내부에서 일하기 어려워 사표를 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지금은 결국 공무원 조직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새 청장에게 거는 기대는 더 크다. ‘좋은 구호’가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산을 늘리는 것만큼, 예산이 민간 투자로 레버리지되는 구조가 중요하다. 춘천만큼 가까운 우주를, 산업만큼 단단한 계획으로 묶어내길. 우주로 가는 로켓보다 중요한 것은, 민간이 뛰어들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정책의 추진력이다. 그 첫 단추를 새 청장이 매만져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