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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 에버런 마라톤클럽에서 배운다

임윤철 · 2026.02.28

[임윤철 칼럼] 에버런 마라톤클럽에서 배운다

오늘 아침 운동장 트랙에 서니 한바퀴는 쌀쌀한 느낌, 그이후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막 시작한 왕초보지만,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나가자’고 마음먹고있다. 그런데 오늘은 뜻밖의 배움의 행운이 있었다. 우리 클럽에서 늘 1등하는 친구가 평상시 속도를 확 낮추어 내 수준의 보폭으로 같이 뛰어주었다. 신기하게도 뛰기가 ‘편해졌다’. 힘이 덜 든 게 아니라, 힘을 쓰는 방식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그 순간 아프리카 속담도 떠올랐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혼자였다면 조금 더 빨리 뛰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1등친구가 만들어주는 보폭에 맞추어 함께 뛰니 더 멀리, 더 오래 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운 듯 하다.

1등이란 무엇인가. 흔히 1등은 속도나 기록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1등은 ‘페이스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언제 힘을 쓰고, 언제 힘을 아끼는지 안다. 호흡이 무너지는 지점을 알고, 무너진 뒤 복구하는 루틴이 있다. 무엇보다 1등은 기준이 다르다. 남을 이기기 전에 먼저 “흔들리는 나”를 수없이 이겨본 사람이다. 그래서 1등의 옆에서 배우면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과 리듬을 함께 배운다.

그렇다면 1등을 ‘연이어’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단발의 1등은 재능과 컨디션의 선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연속 1등은 선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완성인 듯 하다. 훈련·휴식·회복·영양·멘탈 관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면 1등은 이 시스템을 완성시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패와 부상을 줄이는 방법을 알고, 흔들려도 다시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이 실력만큼 의지가 돋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지는 정신력의 과시가 아니라, 시스템을 끝까지 지키는 힘이다.

바둑을 떠올리면 더 분명해진다. 수많은 강자가 모인 판에서 ‘한 번’이기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강국의 기사들을 상대로 1등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 대국마다 판세를 읽고, 시간과 감정을 관리하며, 실수를 최소화하는 반복 가능한 실력의 증거다. 안세영의 배드민턴도 마찬가지다. 상대 분석이 빨라질수록 승패는 체력보다 집중력, 동선, 리커버리, 부상 관리에서 갈린다. 결국 ‘연속 1등’은 기술도 있지만 운영 능력이 뒤어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이 이야기는 운동장 밖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특히 기술사업화에서 그렇다. 연구실에서 태어난 기술은 대개 ‘완성된 답’이 아니다. 시장은 정답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고객의 불편을 줄이고, 가격을 맞추고, 규제와 인증을 통과하고, 생산과 품질을 안정시키는 ‘끝까지 달리는 능력’을 요구한다. 많은 기술보유자가 여기서 넘어지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방식도 모른다. 그래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상용화를 많이 해본 기업과 협업해야 한다. 시장에서 격렬하게 살아본 기업은 제품 기획, 원가 구조, 공급망, 유통, 고객 확보까지의 코스를 몸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기술이 좋다’는 말을 ‘제품/서비스가 팔린다’로 바꾸는 방법을 안다.

기술사업화의 세계에서 경쟁자의 학습 속도는 매우 빠르다. 오늘 격차가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조만간 격차는 없어지고 평준화된다. 그래서 경험 기업과 기술공급자의 협업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분업이나 하도급이 아니라, 시장 대응 속도를 올리는 동맹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보유자는 자존심 대신 데이터와 고객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하고, 경험 기업은 기술의 강점을 제품/서비스 언어로 바꿔야 한다. 서로의 약점을 메우는 순간, 기술은 기록이 아니라 매출이 되고, 매출은 다시 다음 기술의 투자 여력이 된다.

결론은 단순하다. 빠른 성과를 원해 혼자 뛰면 금방 지친다. 멀리 가려면 1등과 함께 뛰어야 한다. 운동이든 사업이든, 1등을 만든 것은 재능도 어느정도는 필요하겠지만 ‘끝까지 가는 설계능력과 이의 실행’이다. 그러니 무조건 1등에게 배워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1등과 같은 트랙을 달려라. 그때 기술도, 사람도, 결국 시장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한다. "에버런마라톤클럽"의 앞선 여러 선배들에게 오늘도 배웠다. 토요일 아침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