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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혁신은 자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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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주박사의 중앙일보 4월6일자, 최근 칼럼은 우리나라 정부R&D시스템의 본질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 절차와 규정, 평가와 감사에 묶인 현재의 구조에서는 결코 파괴적 혁신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연구자는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이며, 혁신은 통제가 아니라 자율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그의 주장은 분명 옳지만, 동시에 절반의 진실에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혁신은 ‘자율성’만으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행위이며, 예측할 수 없는 실패와 우연한 발견의 연속이다. 따라서 이를 행정적 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정부 R&D가 보여준 가장 큰 실패는 바로 이 지점, 즉 연구를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착각한 데 있었다.
연구자는 자율성만 보장받으면 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 재원, 즉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연구라면 더욱 그렇다. 자율성과 책임은 대립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설계되어야 하는 쌍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R&D의 문제는 자율성이 부족한 것도 맞지만, 동시에 ‘성과 책임 구조’ 역시 제대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의 시스템은 이상하다. 단기 성과를 강요하면서도, 장기적 책임은 묻지 않는다. 연구자는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고 평가를 받지만,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단기 평가가 끝나면 정작 그 연구가 5년, 10년 후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과제 수행의 흔적’이지 ‘문제 해결의 결과’가 아니다. 연구는 했는데, 성과는 미흡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평가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필자는 정부R&D평가를 ‘시간 기반 3단계 구조’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5년 단위의 1차 평가다. 이 단계에서는 연구 방향성과 중간 성과를 점검한다. 단기 성과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가 올바른 문제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8년 시점의 2차 평가다. 이 단계에서는 기술의 실질적 진전과 산업적 연결 가능성을 본다. 단순한 논문이나 특허가 아니라, 실제 활용 가능성과 파급력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셋째, 최종 연구결과에 대한 3차 평가를 12~13년차에 한다. 연구가 끝난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그 연구가 사회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는 구조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성과 책임’이 완성된다.
이러한 구조는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주면서도, 동시에 장기적 책임을 명확히 한다. 단기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면서도, 결과에 대한 무책임을 방지하는 균형점이다.
또 하나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연구 주체의 재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연구를 대학과 출연연에 몰아넣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의 성격에 따라 주체는 달라져야 한다. 3년 이하의 단기 연구는 기업이 맡는 것이 맞다. 시장과 가까운 기업이 빠르게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반면, 대학과 출연연은 최소 5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기초기술, 원천기술, 그리고 미래 산업의 기반을 만드는 연구는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단기 과제에 매달리는 구조에서는 대학도, 출연연도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자율적이면서도 책임 있는 R&D 시스템’이다. 홍성주박사의 지적처럼, 지금의 행정 중심 구조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안이 단순한 자율성 확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율성과 책임, 단기와 장기, 연구와 시장이 정교하게 연결된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혁신은 자유에서 시작되지만, 책임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구비도, 더 많은 과제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연구를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이다. 그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고도, 혁신은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