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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철 칼럼]식탁에서 기술사업화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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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이 식탁을 만드는 시작이 된다. 냉장고를 열고, 무슨 식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시장을 볼 목록을 적고, 어떤 식재료를 살지 결정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완성된 한 끼를 머릿속에서 설계한다. 그리고 곧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이 음식은 어떤 그릇에 담을까? 국이면 깊이가 필요하고, 파스타면 넓은 접시가 어울린다. 색이 강한 음식은 흰 접시에 올려야 살아나고, 소스가 흐르는 요리는 테두리가 있는 그릇이 편하다. 요리를 시작하면서 그릇을 먼저 꺼내 두는 이유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다. ‘끝’을 결정해야 ‘과정’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건, 요리하는 동안 생각이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리를 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다른 일을 한다. 같이 먹을 사람의 취향을 떠올리고, 매운맛을 조절하고, 알레르기나 식단을 고려한다. 식탁의 분위기를 생각하며 반찬 수를 가늠하고, 물컵과 수저 위치까지 머릿속으로 리허설한다. 만들고 있는 음식 말고도, 곁들이면 좋을 다른 음식이 떠오른다. 샐러드가 필요할까, 수프가 있으면 좋을까. 디저트까지 준비한다면 동선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내가 만족하는 식탁의 상황’은 레시피 하나로 절대 결정되지 않는다. 재료, 조리, 담음새, 동선, 사람, 분위기—이 조각들이 한 장면으로 묶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식탁의 완성은 나름대로의 종합예술에 가깝다.
‘기술사업화’가 이를 닮아 있다. 아니, 좀 강하게 표현하면 정확히 그렇다. 기술은 훌륭한 식재료이자 핵심 레시피일 수 있다. 하지만 식재료만으로는 한 끼가 되지 않는다. 레시피만으로도 식탁은 차려지지 않는다. 기술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면, 사업화는 ‘누가 왜 돈을 내고, 어떤 순간에, 어떤 경험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설계한다. 같은 기술도 어떤 시장에서 어떤 포장으로, 어떤 유통 경로로, 어떤 가격과 신뢰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기술이 뛰어나도 고객의 입에 들어갈 형태로 담기지 않으면, 결국 주방에서 끝난다.
그래서 기술사업화의 주체는 멀티플레이어여야 한다. 양손잡이가 되어야 한다. 멀티플레이어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시간대에 여러 질문을 오가며, 빠르게 연결해 ‘한 장면’으로 묶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객을 보며 기술의 기능을 다시 정의하고, 동시에 비용과 일정, 규제, 품질, 파트너를 고려한다. 제품을 설계하면서도 판매 채널과 서비스 운영을 떠올리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면서도 인증과 데이터 근거를 준비한다. 요리 중간에 “어떤 그릇에 담을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허둥대듯, 사업화 중간에 “어떤 형태로 전달될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출시 직전에 무너진다.
예를 들어, 냉장된 재료를 먼저 쓰지 않으면 상하고, 불 조절을 잘못하면 같은 재료도 질감이 망가진다. 손님이 늦는다면 뜨거운 음식의 순서를 바꾸고, 아이가 있다면 맵기 대신 고소함을 선택한다. 이것은 ‘요리 실력’이라기보다 ‘상황 설계 능력’이다. 기술사업화에서 흔히 놓치는 것도 이 지점이다. 기술을 증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고객이 만나는 첫 화면은 불편하고, 설치는 어렵고, A/S는 불명확하고, 가격은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좋은 재료였는데 왜 안 팔리지?”라는 질문이 남는다.
멀티플레이어, 양손잡이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읽는 능력’도 포함한다. 누구와 먹을지 생각해야 메뉴가 정해지듯, 누구의 문제를 풀지 정해야 제품이 정해진다. 고객 세그먼트를 정하고, 그들의 언어로 가치를 번역하고, 구매를 방해하는 마찰을 하나씩 지우는 일은 레시피가 아니라 상차림이다. 이를 ‘포장’하는거? 라고 이야기 하는 이도 있지만 이는 ‘포장’이 아니라 ‘기획’이고 또 다른 기술이다.
따라서 기술사업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니라 “이 기술이 어떤 식탁에서, 어떤 그릇에, 누구의 하루를 더 낫게 만들 것인가”다.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과 주체가 기술과 시장을 연결한다. 멀티플레이어는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 조각난 요소들을 한 장면으로 조립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그 감독의 시선이 있을 때, 기술은 시장에서 ‘먹히는’ 형태로 익어간다. 기술사업화의 영역이 기술개발의 영역과 다른 점이다.